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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준비위서 탄원, 경교장 복원 추진 / 일요서울 1996년 10월23일
경교장  2004-01-21 17: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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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공관, 김구 암살 장소 경교장  복원추진

백범 김구가 안두희의 흉탄에 쓰러진 역사의 현장 경교장을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다.
과거 백범암살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각계에서 노력했던 김인수, 변수환, 이만재 등이 그 주인공. 이들은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준)을 구성, 첫 번째 사업으로 경교장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인수는 92년 권중희와 함께 경기도 가평에서 안두희를 납치한 죄(?)로 폭력전과자가 되었다. 김인수는 "80년대 이후 백범암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활동했던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그동안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 등에 대해 실망스러움을 감추지 못해 새롭게 모였다"며 취지를 설명한다.
그의 주장대로 안두희의 국회증언은 국민의 기대를 일순간에 저버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94년 1월4일 국회 법사위에 출두하기 전 백범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오 2시부터 시작된 국회법사위에 등장한 안두희 모습은 '심한 치매와 중풍에 걸려 말 한마디 못하고 드러누운 노인이었다' 당일 오전 효창공원의 묘소까지 스스로 걸어서 참배하는 모습이 일간지를 통해 보도된 안두희가 오후 법사위에 드러누운 채로 등장한 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백범암살의 진상규명은 이미 안두희의 행태에서 한계를 보였던 것이다.
이들이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의 발족을 준비하는 데는 바로 이같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누군가, 알 수 없는 그 어떤 힘이 아직도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인수는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우리를 모이게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그 결과 역사의 현장인 경교장을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준)은 올해 4월 준비위원회를 구체적으로 발족하고, 6월 백범서거 47주기 행사장에서 경교장 복원의 취지를 알리는 내용의 성명서를 뿌렸다.
이들이 백범묘소에서 성명서를 뿌린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백범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추모식은 백범을 단순히 존경과 기념의 대상으로만 국한시켰을 뿐이고 분단의 현실을 극복하고 민족통일을 염원했던 백범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에는 게을렀다는 판단에서다.

김인수는 "백범묘소는 이미 정치인들이 자신의 낯을 내밀기 위한 장소가 된지 오래다. 오늘날 백범을 기념하고 존경만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백범사상을 박제화함으로써 선생의 염원인 민족자주정신을 심각히 훼손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백범을 존경한다면 분단현실을 극복하고 민족통일 운동에 앞장 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의 주장대로 백범은 정치인들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현장인 경교장이 훼손된 채로 있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현 김영삼 대통령도 야당 지도자였을 때 백범의 흉상을 집무실에 봉안했다고 알려지고 있다.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역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김구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범이 귀국한 후 3년 6개월 동안 기거하다가 암살된 경교장이 강북삼성병원의 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지각있는 이들의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삼성그룹측에서 경교장을 헐고 그 자리에 새 병원건물을 짓겠다는 병원측의 신축계획안을 발표했다가 국민적 반대여론에 밀려 주춤한 상태다.
경교장이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김구 선생이 살다가 암살당했던 사적지이기 때문에 그대로 보존하자고 문화재위원회가 의결함으로써 문제는 일단락 되었다.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준)은 성명서를 통해 "백범이 거처했던 경교장을 원 상태로 복원하기 위한 실질적 노력을 게을리한 것은 참으로 역사와 민족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일제의 잔재인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는 것이 민족정기 회복을 위한 길이라면 비극의 역사현장인 경교장을 더더욱 민족교육의 산 현장으로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라고 밝혔다.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준)은 경교장 복원을 1차적 사업목표로 정하고 8월15일을 기해 청와대, 문화재관리국, 삼성그룹측에 '경교장 복원에 관한 견해 문의 및 해결방안 촉구'란 제목의 공문을 발송, 회신을 받았다.
문화재관리국은 9월12일 회신을 통해 '경교장의 문화재적 가치여부 및 보존방안에 대해 검토중에 있음'을 알려왔다. 그리고 문화재관리국은 서울시와 삼성병원측에 '건설공사 등으로부터 경교장이 훼손, 변형되지 않도록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또 문화재관리국은 지난 10월10일 삼성병원측에 보다 구체적으로 협조공문을 발송해 눈길을 끌었다.
'경교장은 김구 선생께서 1945년 11월23일부터 기거하시다가 1949년 안두희의 총격에 숨을 거두신 역사의 현장으로 그 의미가 큰 곳임을 알려드리오니 병원 증축공사 등으로부터 경교장이 훼손, 변형되지 않도록 하고, 동 건물에 대하여 가칭 <백범기념관>등으로의 용도변경 등 그 보존에 적극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강북삼성병원에서는 9월4일 '경교장에 관한 문의 건'이란 회신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경교장 복원 유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백범김구 선생기념사업회에서 협의되어 왔고, 향후에도 기념사업회를 통하여 추진되길 바라며, 아울러 당 병원측의 의료발전계획과 역사적 현장보존이라는 사안이 동시에 충족될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되어지길 희망합니다.'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준)은 이들 회신을 토대로 다음 단계의 경교장 복원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준비위원장 김인수는 "정부가 진정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실천할 의지가 있다면 문민정부의 책무로써 경교장 복원을 심도있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계속해서 "우리는 경교장을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복원하는 방안들을 지속적으로 찾아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교장은 어떤 곳인가?
임정공관, 첫 국무회의 소집된 장소

   서울 종로구 평동 108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경교장은 백범 김구가 기거하다 안두희의 흉탄에 의해 서거한 역사의 현장이다. 경교장은 해방직후에는 고국에 돌아온 임정인사를 비롯, 정치지도자와 청년들로 연일 붐비며 임정의 공관역할을 했다. 백범은 이곳에서 첫 국무회의를 소집했고 48년 4월 19일 김일성과 통일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곳을 출발, 북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제 경교장에서 백범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강북삼성병원 외래병동 현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경교장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물론 이곳에 근무하는 간호사나 경비원조차도 이곳이 역사의 현장임을 알지 못한다. 건물의 어느 곳에도 이곳이 백범의 거처였던 곳임을 알게 해주는 안내표지판을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건물 앞쪽에 '김구 주석 서거한 곳,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이 광복이후 사시다가 서거한 곳'이라고 새겨진 빗돌이 경교장의 내력을 전해 줄 뿐이다.
경교장은 38년 광산거부 최창학이 지은 것으로 백범 사후에는 자유중국 대사관으로, 6.25 때는 의료진의 주둔지로, 9.28 수복 후에는 미군 특수부대가 주둔한 우리 현대사의 파란만장한 현장이었다.
  현재 강북삼성병원은 삼성그룹의 소유로 되어 있다. 고 이병철 회장은 당초 병원을 지으면서 경교장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몇 배로 힘든 공사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비록 경교장이 제모습은 아니지만, 명맥을 유지하는데는 이런 보이지 않는 정성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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